시편 73편
본문
시편 73편의 아삽이 마주했던 그 혼란과 깨달음의 결을 정말 예리하고 깊이 있게 짚어내셨네요.
악인들이 이 세상에서 고통도 없이 평온하게 잘 먹고 잘 살며 큰소리치는 모습을 볼 때, 하나님을 믿고 바르게 살려고 아등바등 버텨온 내 삶은 오히려 상처투성이고 엉망진창인 것 같아서 "내가 내 마음을 깨끗하게 하고 내 손을 씻어 무죄하다 한 것이 진실로 헛되다"라며 무너져 내렸던 아삽의 마음—그것은 어쩌면 평생을 부조리한 폭력과 상처 속에서 '나는 왜 이 모양일까'를 곱씹어 온 당신의 심정과 정확히 포개어지는 부분이기도 할 겁니다.
아삽이 성전 성소에 들어가 하나님의 지엄하고 영원한 임재 앞에 서기 전까지는, 세상의 잣대(돈, 권력, 평안, 성공)가 삶의 정답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전에서 그 영원한 시차로 세상을 내려다보았을 때, 아삽이 깨달은 것은 크게 두 가지였을 겁니다.
첫째는, 세상의 악인들이 누리는 그 화려하고 평온한 형통이 실은 '미끄러운 곳에 세워진 신기루'에 불과하다는 허망함이었습니다.
그들이 떵떵거리며 사는 것이 하나님의 진짜 축복이 아니라, 영원한 관점에서 보면 단 한 순간에 무너질 허상에 불과한데, 자기는 그 썩어 없어질 껍데기들을 부러워하며 "왜 저런 걸 내게 안 주시냐"고 하나님을 원망하고 떼를 썼으니, 그 모습이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좁고 어리석어 보였겠습니까.
둘째는, 자신이 그토록 집착하고 억울해했던 '이 세상에서의 성공과 보상'이라는 게 얼마나 부질없는 잣대였는가 하는 깨달음입니다.
아삽은 하나님께 나아가서야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내가 진짜 부러워해야 할 것은 저들의 평온함이 아니라, 내가 이 엉망진창인 세상 속에서도 여전히 하나님의 손에 붙들어 매여 있다는 사실 그 자체였다는 것을요.
그래서 마지막에 "내가 이같이 우매 무지하므로 주 앞에 짐승으로서이다"라고 고백한 것입니다. 짐승이 당장 눈앞에 있는 먹이와 풀만 보고 살아가듯, 자신 역시 하나님의 영원한 뜻과 깊은 섭리는 헤아리지 못한 채, 당장 세상 사람들처럼 잘살지 못한다고, 억울한 일 겪었다고 눈이 멀어 하나님을 짐승처럼 원망하고 떼를 썼던 자기 자신의 어리석음이 부끄럽고 아팠던 것이지요.
하지만 아삽의 그 고백은 자책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그 뒤에 바로 이렇게 이어지니까요.
"내가 항상 주와 함께 하니 주께서 내 오른손을 붙드셨나이다... 하나님이 내 마음의 반석이시요 영원한 분깃이시라."
이 세상에서 부모에게 상처받고, 몸과 마음의 입력값이 망가지고, 남들처럼 평탄하게 사랑받으며 살지 못했다고 해서 당신의 인생이 실패한 것이 아닙니다. 세상의 잣대로 보면 짐승처럼 억울하고 바닥을 기는 것 같아도, 그 아픔의 터널 속에서 끝내 하나님의 품을 놓지 않고 몸부림쳐 온 그 모든 시간은, 결코 헛된 찌꺼기로 끝나지 않을 것입니다.
오늘 아삽의 시를 통해 당신이 던진 그 깊은 질문 속에, 이미 지친 마음을 추스르고 진실을 찾아가려는 단단한 힘이 담겨 있음을 느낍니다. 오늘도 그 무거운 마음을 안고 버텨내느라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악인들이 이 세상에서 고통도 없이 평온하게 잘 먹고 잘 살며 큰소리치는 모습을 볼 때, 하나님을 믿고 바르게 살려고 아등바등 버텨온 내 삶은 오히려 상처투성이고 엉망진창인 것 같아서 "내가 내 마음을 깨끗하게 하고 내 손을 씻어 무죄하다 한 것이 진실로 헛되다"라며 무너져 내렸던 아삽의 마음—그것은 어쩌면 평생을 부조리한 폭력과 상처 속에서 '나는 왜 이 모양일까'를 곱씹어 온 당신의 심정과 정확히 포개어지는 부분이기도 할 겁니다.
아삽이 성전 성소에 들어가 하나님의 지엄하고 영원한 임재 앞에 서기 전까지는, 세상의 잣대(돈, 권력, 평안, 성공)가 삶의 정답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전에서 그 영원한 시차로 세상을 내려다보았을 때, 아삽이 깨달은 것은 크게 두 가지였을 겁니다.
첫째는, 세상의 악인들이 누리는 그 화려하고 평온한 형통이 실은 '미끄러운 곳에 세워진 신기루'에 불과하다는 허망함이었습니다.
그들이 떵떵거리며 사는 것이 하나님의 진짜 축복이 아니라, 영원한 관점에서 보면 단 한 순간에 무너질 허상에 불과한데, 자기는 그 썩어 없어질 껍데기들을 부러워하며 "왜 저런 걸 내게 안 주시냐"고 하나님을 원망하고 떼를 썼으니, 그 모습이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좁고 어리석어 보였겠습니까.
둘째는, 자신이 그토록 집착하고 억울해했던 '이 세상에서의 성공과 보상'이라는 게 얼마나 부질없는 잣대였는가 하는 깨달음입니다.
아삽은 하나님께 나아가서야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내가 진짜 부러워해야 할 것은 저들의 평온함이 아니라, 내가 이 엉망진창인 세상 속에서도 여전히 하나님의 손에 붙들어 매여 있다는 사실 그 자체였다는 것을요.
그래서 마지막에 "내가 이같이 우매 무지하므로 주 앞에 짐승으로서이다"라고 고백한 것입니다. 짐승이 당장 눈앞에 있는 먹이와 풀만 보고 살아가듯, 자신 역시 하나님의 영원한 뜻과 깊은 섭리는 헤아리지 못한 채, 당장 세상 사람들처럼 잘살지 못한다고, 억울한 일 겪었다고 눈이 멀어 하나님을 짐승처럼 원망하고 떼를 썼던 자기 자신의 어리석음이 부끄럽고 아팠던 것이지요.
하지만 아삽의 그 고백은 자책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그 뒤에 바로 이렇게 이어지니까요.
"내가 항상 주와 함께 하니 주께서 내 오른손을 붙드셨나이다... 하나님이 내 마음의 반석이시요 영원한 분깃이시라."
이 세상에서 부모에게 상처받고, 몸과 마음의 입력값이 망가지고, 남들처럼 평탄하게 사랑받으며 살지 못했다고 해서 당신의 인생이 실패한 것이 아닙니다. 세상의 잣대로 보면 짐승처럼 억울하고 바닥을 기는 것 같아도, 그 아픔의 터널 속에서 끝내 하나님의 품을 놓지 않고 몸부림쳐 온 그 모든 시간은, 결코 헛된 찌꺼기로 끝나지 않을 것입니다.
오늘 아삽의 시를 통해 당신이 던진 그 깊은 질문 속에, 이미 지친 마음을 추스르고 진실을 찾아가려는 단단한 힘이 담겨 있음을 느낍니다. 오늘도 그 무거운 마음을 안고 버텨내느라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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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문님의 댓글
여기다 그걸 적는게 맞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