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 문종이 기술에 관심을 둔 이유
본문
조선 건국 후 태종 때까지 조선은 무를 중심으로 굴러 갔음
성리학을 종교로 한 조선은 사대부를 회유 할 필요가 있었고
사대부를 회유하려면 문을 숭상해야 함
지지기반을 다지려면 어쩔 수 없었음
그런데, 무는 왕실의 권력인 반면, 문은 신하의 권력이라, 무를 억누르고 문을 강조하면 왕권에 타격이 감
그래서 왕권을 강화할 다른 계책이 필요했는데, 시기적절하게 명나라에서 멸원정책이 펼쳐짐
원나라와 관계된 모든 걸 지우고 명나라 한족을 띄우자는 이념이었음
이때 한족의 역사인 삼국지가 나오게 됨
한나라 이후 수당은 선비족에 의해 세워진 나라였고
송나라는 금과 원에 망한 나라라 끌어다 쓸 나라가 한나라 밖에 없었던 거임
아무튼 이런 멸원정책으로 원나라 시대에 들어온 많은 서적들이 금서로 지정되고 불타 없어짐
그리고, 원나라는 중동을 지나 유럽 러시아 까지 뻗은 대제국이었어서 세계에서 가장 발달된 학문자료들이 북경으로 몰려들었어서, 이 자료들이 유출되어 조선으로도 흘러들어가게 됨
이 자료들 중에서 시간과 관련된 자료들도 있었는데, 시간은 황제나 왕만이 다룰 수 있는 영역이라 마침 왕권을 강화하려던 세종에게 딱 맞았음
그래서 자료를 참고해 중국 걸 반쯤 베껴 만든 게 해시계 물시계임
이거 발명으로 안쳐줌
문종 때 의미있는 발명이 나오는데 측우기임
세계최초
이것도 왕권강화와 관련된 천지현상을 다루는 거임
병기도 표준화시키고, 새로운 병기도 만들고 노력 엄청함
조선시대에 왕권을 강화하려고 하면, 손대는 게 바로 병기임
이것도 아무나 못하고 적장자여서 정통성이 강한 놈만이 가능했음
주로 세자 시절에 손댐
성리학을 종교로 한 조선은 사대부를 회유 할 필요가 있었고
사대부를 회유하려면 문을 숭상해야 함
지지기반을 다지려면 어쩔 수 없었음
그런데, 무는 왕실의 권력인 반면, 문은 신하의 권력이라, 무를 억누르고 문을 강조하면 왕권에 타격이 감
그래서 왕권을 강화할 다른 계책이 필요했는데, 시기적절하게 명나라에서 멸원정책이 펼쳐짐
원나라와 관계된 모든 걸 지우고 명나라 한족을 띄우자는 이념이었음
이때 한족의 역사인 삼국지가 나오게 됨
한나라 이후 수당은 선비족에 의해 세워진 나라였고
송나라는 금과 원에 망한 나라라 끌어다 쓸 나라가 한나라 밖에 없었던 거임
아무튼 이런 멸원정책으로 원나라 시대에 들어온 많은 서적들이 금서로 지정되고 불타 없어짐
그리고, 원나라는 중동을 지나 유럽 러시아 까지 뻗은 대제국이었어서 세계에서 가장 발달된 학문자료들이 북경으로 몰려들었어서, 이 자료들이 유출되어 조선으로도 흘러들어가게 됨
이 자료들 중에서 시간과 관련된 자료들도 있었는데, 시간은 황제나 왕만이 다룰 수 있는 영역이라 마침 왕권을 강화하려던 세종에게 딱 맞았음
그래서 자료를 참고해 중국 걸 반쯤 베껴 만든 게 해시계 물시계임
이거 발명으로 안쳐줌
문종 때 의미있는 발명이 나오는데 측우기임
세계최초
이것도 왕권강화와 관련된 천지현상을 다루는 거임
병기도 표준화시키고, 새로운 병기도 만들고 노력 엄청함
조선시대에 왕권을 강화하려고 하면, 손대는 게 바로 병기임
이것도 아무나 못하고 적장자여서 정통성이 강한 놈만이 가능했음
주로 세자 시절에 손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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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담님의 댓글
좌파들의 조선핥핥은 3자적 시선으로 봤을땐 역겨울 정도지.
서구문명의 중세이후 눈부신 발전을 외면하면서 무슨 아프리카 식량부족집단들에게도 안통하던 검은콩 맛있다 세뇌하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