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부에 김대중 귀신이 씌인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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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나라팔아먹는거라면 사족을 못쓰는.....
자국 장병이 피해입은 지뢰조사를 왜 안할까? 간단함.
후에 잭 프리처드 전 한반도평화회담 미국 특사는 저서 ‘실패한 외교(김연철[61]-서보혁 옮김, 사계절 펴냄)'에서
해군 장병 6명이 희생됐는데도 김대중 정부는 이를 무시하고 오직 햇볕정책에만 매달렸다고 주장했다.
당시 조지 W. 부시 행정부는 서해교전의 여파 때문에 2002년 7월 10일로 잡혀 있던 대북 협상단의 평양 방문을 미루려 했으나
오히려 대한민국 정부가 예정대로 추진해 줄 것을 요청했지만 이를 보다 못한 미국 정부가 오히려
‘대한민국이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북한을 상대하도록 놔두지는 않을 것’이라며 대한민국 정부에 주의(注意)를 줬다고 프리처드는 밝혔으며
미 정부는 협상단의 방북을 연기했는데 그때의 한미관계가 이처럼 ‘기괴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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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사과에 대한 의견도 엇갈리는데 그나마 사과 비슷한 거라도 하나 한 것만 봐도 큰 성과 아니냐고 주장하는 측과
사과라는 표현 자체도 없거니와 소위 "아랫것들의" ‘우발적 충돌’이라면 그에 대한 처벌 의지도 담겨 있지 않고
자신들이 먼저 도발했다는 언급도 없는 유감 통지가 어딜 봐서 사과냐며 의견이 대립하고 있다.
실제로 교전 직후 김대중 전 대통령 주재로 열린 국가안전보장회의(NSC)는 우발적 충돌로 결론지었고 같은 내용의 북한 통지문이 오자 그대로 수용했다.
당시 준장 계급으로 777사령부 예하부대장을 지낸 예비역 육군 소장 한철용 장군은 2002년 7월 4일 개최된 한·미 정보부처 장성단의 평가 회의에서
"국방부는 북한의 도발이 ‘우발적이다, 경비정의 단독 행위다. 8전대 이상 북한 상부는 관여 안 했다’고 주장했지만
한미연합사는 ‘북한의 계획적 도발이었다’는 판단을 내려 결론이 나지 않았다. 당시 미군 정보 관계자들은 국방부의 태도에 속이 부글부글 끓는 분위기였다”고 회고했다
자국 장병이 피해입은 지뢰조사를 왜 안할까? 간단함.
후에 잭 프리처드 전 한반도평화회담 미국 특사는 저서 ‘실패한 외교(김연철[61]-서보혁 옮김, 사계절 펴냄)'에서
해군 장병 6명이 희생됐는데도 김대중 정부는 이를 무시하고 오직 햇볕정책에만 매달렸다고 주장했다.
당시 조지 W. 부시 행정부는 서해교전의 여파 때문에 2002년 7월 10일로 잡혀 있던 대북 협상단의 평양 방문을 미루려 했으나
오히려 대한민국 정부가 예정대로 추진해 줄 것을 요청했지만 이를 보다 못한 미국 정부가 오히려
‘대한민국이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북한을 상대하도록 놔두지는 않을 것’이라며 대한민국 정부에 주의(注意)를 줬다고 프리처드는 밝혔으며
미 정부는 협상단의 방북을 연기했는데 그때의 한미관계가 이처럼 ‘기괴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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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사과에 대한 의견도 엇갈리는데 그나마 사과 비슷한 거라도 하나 한 것만 봐도 큰 성과 아니냐고 주장하는 측과
사과라는 표현 자체도 없거니와 소위 "아랫것들의" ‘우발적 충돌’이라면 그에 대한 처벌 의지도 담겨 있지 않고
자신들이 먼저 도발했다는 언급도 없는 유감 통지가 어딜 봐서 사과냐며 의견이 대립하고 있다.
실제로 교전 직후 김대중 전 대통령 주재로 열린 국가안전보장회의(NSC)는 우발적 충돌로 결론지었고 같은 내용의 북한 통지문이 오자 그대로 수용했다.
당시 준장 계급으로 777사령부 예하부대장을 지낸 예비역 육군 소장 한철용 장군은 2002년 7월 4일 개최된 한·미 정보부처 장성단의 평가 회의에서
"국방부는 북한의 도발이 ‘우발적이다, 경비정의 단독 행위다. 8전대 이상 북한 상부는 관여 안 했다’고 주장했지만
한미연합사는 ‘북한의 계획적 도발이었다’는 판단을 내려 결론이 나지 않았다. 당시 미군 정보 관계자들은 국방부의 태도에 속이 부글부글 끓는 분위기였다”고 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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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암사동심신미약상남자님의 댓글
우발적으로 군사분계선 침범해서
전진기지 개척하고 지뢰심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