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실 재산 관련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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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실이 가난하니 운운하길래
이거 관련해서 명확하게 보여주는 사건이 일제시절의 전라도의 독립운동으로 꼽는 궁삼면 토지 투쟁임 ㅋ
사건의 시작은 1888년 전라도 나주에 극심한 가뭄이 들어서 1300가 이상이 되던 가족중 1100이상이 토지를 투탁하고 유민이됨
이렇게 버려진 땅을 경저리일을 하던 넘이 토지세 대납하고 자기 소유로 만듦
애초에 궁삼면이라는 이름 자체가 3개면 전체가 궁방전 -조선 제도상 각 궁궐은 호조가 아니라 전답을 소유하고 거기에 나오던 돈으로 쓸 돈을 처리함- 소속이 많아서 그런거기도 하고
이후에 농민들이 난리치니 1897년 토지환부 결정을 내리지만 안 돌려줘서 1899년 서울에 상소하겠다고 상경한 36명을 체포하고 투옥 당하였으며 지방 판결문은 파기됨
1908년 대한제국에서 토지 조사할때 소유를 경선궁으로 고종의 후궁이자 영친왕의 생모의 소유가 됨
이후 동양척식회사가 세워지면서 대한황가는 거기 출자할 지분 마련을 위해서 소유권을 팔아넘기고 1년후 한일합방
한일합방 후에는 계속 소유권 분쟁이 일어나다가 1920년대 문화통치 시기가 되면서 일본인 변호사이자 독립운동가 후세 다쓰지의 지원 아래에 일부 돌려받는 것으로 끝남
괜히 일제시대 이왕가가 천황 제외한 제 1 귀족이 아니었음
이거 관련해서 명확하게 보여주는 사건이 일제시절의 전라도의 독립운동으로 꼽는 궁삼면 토지 투쟁임 ㅋ
사건의 시작은 1888년 전라도 나주에 극심한 가뭄이 들어서 1300가 이상이 되던 가족중 1100이상이 토지를 투탁하고 유민이됨
이렇게 버려진 땅을 경저리일을 하던 넘이 토지세 대납하고 자기 소유로 만듦
애초에 궁삼면이라는 이름 자체가 3개면 전체가 궁방전 -조선 제도상 각 궁궐은 호조가 아니라 전답을 소유하고 거기에 나오던 돈으로 쓸 돈을 처리함- 소속이 많아서 그런거기도 하고
이후에 농민들이 난리치니 1897년 토지환부 결정을 내리지만 안 돌려줘서 1899년 서울에 상소하겠다고 상경한 36명을 체포하고 투옥 당하였으며 지방 판결문은 파기됨
1908년 대한제국에서 토지 조사할때 소유를 경선궁으로 고종의 후궁이자 영친왕의 생모의 소유가 됨
이후 동양척식회사가 세워지면서 대한황가는 거기 출자할 지분 마련을 위해서 소유권을 팔아넘기고 1년후 한일합방
한일합방 후에는 계속 소유권 분쟁이 일어나다가 1920년대 문화통치 시기가 되면서 일본인 변호사이자 독립운동가 후세 다쓰지의 지원 아래에 일부 돌려받는 것으로 끝남
괜히 일제시대 이왕가가 천황 제외한 제 1 귀족이 아니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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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우주는이미멸망했다님의 댓글
선조처럼 도망도 못간 고종 등신



Kimjae93님의 댓글
조선자체가마지막에너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