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근대화가 가능했던 가장 큰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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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 큰 이유는 일본이 하나의 국가로 뭉쳐져 있지 않았다는 것이다.
지방 권력자들끼리 서로 싸우면서 견제하는 과정에서
기득권이라고 할 수 있는 막부 측과 상대적으로 소외되었던 지방세력이 싸웠는데
그 명분이 메이지 유신이었던 거지.
아이러니하지만 안정된 사회가 아니었기 때문에 개혁도 가능했던 거다.
조선은 안정적인 사회였었기 때문에 중기 이후 사회 시스템이 무너지는 상황에서도
그 반대측 군벌이 성장하기 어려운 구조였고
기득권과 싸울 수 있는 지방 세력이 없었던 것이 큼.
조선이 후기 들어서 맛이 간 건 맞지만
일본이 무슨 "우리 모두 근대화 하여 잘 살아보세!"하고 사회 시스템을 개혁한 게 아닌 걸 좀 봤으면 한다.
지방 권력자들끼리 서로 싸우면서 견제하는 과정에서
기득권이라고 할 수 있는 막부 측과 상대적으로 소외되었던 지방세력이 싸웠는데
그 명분이 메이지 유신이었던 거지.
아이러니하지만 안정된 사회가 아니었기 때문에 개혁도 가능했던 거다.
조선은 안정적인 사회였었기 때문에 중기 이후 사회 시스템이 무너지는 상황에서도
그 반대측 군벌이 성장하기 어려운 구조였고
기득권과 싸울 수 있는 지방 세력이 없었던 것이 큼.
조선이 후기 들어서 맛이 간 건 맞지만
일본이 무슨 "우리 모두 근대화 하여 잘 살아보세!"하고 사회 시스템을 개혁한 게 아닌 걸 좀 봤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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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도아르님의 댓글
일본 유신지사들이 제대로 방향 잡고 간 것도 부정할 수는 없음.
당장 베트남은 아예 떠이선 조에 의해 멸망한 응우옌 조의 마지막 후예가 프랑스 힘을 빌려서 떠이선 조를 멸망시키고 응우옌 조를 부활시키는 데 성공했지만 결국 전통적인 베트남의 유교적 외왕내제 체제를 고수하느라 도와준 프랑스랑 척지는 방향으로 계속 가다 결국 식민지가 되었으니.
물론 전통 왕조의 후예로서의 입지도 있었겠지만 따지자면 유신지사라는 놈들은 애초에 반외세 폭도였음. 사츠에이 전쟁, 시모노세키 전쟁으로 대가리 깨지고 개화라는 정반대 방향으로 돌아선 그 판단력 또한 유신의 성공요인 중 하나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