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모자근친 실제 썰, 엄마와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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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렸을 적부터 어머니와 특별한 관계를 맺게 되었다.
고등학교에 진학하던 1996년, 벌써 17년이나 지난 일이다.
우리 집은 아버지, 어머니, 세 살 위 누나, 그리고 나까지 네 식구가 오순도순 사는 평범한 가정이었다. 누구라도 보면 여느 집과 다를 바 없는, 평범한 가족이었다.
그런데 고등학교에 들어가던 그해 초, 중소 무역회사에 다니시던 아버지가 3년 정도 해외 근무를 하게 되셨다. 누나는 서울로 대학에 진학했고, 결국 집에는 나와 어머니만 남게 되었다.
사실 그전까지 저와 어머니의 관계는 다른 집 모자 관계와 별로 다르지 않았다.
어머니는 조금 엄격하셨고, 아들에게 가끔 잔소리도 하시는 평범한 엄마셨다. 나 역시 십대 중반 사춘기 소년들이 흔히 그렇듯, 집에 오면 별말 없이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하고 인사한 뒤 방으로 들어가 대부분의 시간을 혼자 보내는 아이였다. 애교를 부리거나 살갑게 굴지도 않았다.
아버지와 누나가 집을 비우게 된 후, 어머니도 나도 집 안이 이상할 정도로 적적하고 쓸쓸하게 느껴졌다. 그전까지는 미처 느끼지 못했던 가족들의 존재감이었다.
처음에는 ‘그런가 보다, 시간이 지나면 익숙해지겠지’ 하며 별생각 없이 지냈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새로운 학교 생활에 적응하느라 정신없이 한 달을 보내다, 처음으로 숨을 돌릴 수 있는 휴일 식목일을 맞이했다. 일반 주말이 아닌 보너스 같은 휴일이라 몸도 피곤했고, “오늘은 학원도 가지 말고 집에서 푹 쉬어야겠다” 생각했다.
그날 처음으로 어머니와 단둘이 하루 종일 집에 머물며 밥을 먹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
시간이 흐르다 어머니가 문득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버지랑 누나도 없고, 너도 학교 때문에 얼굴 볼 시간도 거의 없어서 집에 있으면 참 쓸쓸했는데… 이렇게 너라도 집에 있으니 좋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만 그렇게 느꼈던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이후 ‘피곤하더라도 집에 있을 때는 어머니와 조금이라도 더 이야기를 많이 나눠야겠다’는 마음이 생겼다.
그날 이후, 나와 어머니는 점점 가까워졌다.
단순한 생물학적 모자 관계를 넘어 소소한 일상 이야기를 주고받고, 장난도 치며 제 또래 모녀보다도 친밀한 사이가 되어갔다. 자연스럽게 일요일이면 함께 장을 보고 쇼핑도 하고 영화도 보러 다니면서 우리의 관계는 더욱 돈독해졌다.
그러던 여름방학 보충수업이 끝난 뒤, 짧은 방학 기간 중 오랜만에 어머니와 영화를 보기로 했다. 평소처럼 표를 사고 영화관 로비에서 시간을 기다리고 있는데, 누군가 제 어깨를 툭 쳤다.
돌아보니 학원에서 꽤 친해진 여자아이였다. 우리는 짧게 인사를 나눴고, 그 아이가 “누구랑 왔어?” 하고 물었다. 내가 “엄마랑”이라고 대답하자, 그녀는 어머니에게 어색하게 인사를 했다. 조금 의아하다는 듯, 뻘쭘한 표정으로.
그 순간 나도 알 수 없는 어색함과 민망함이 밀려왔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때 사회 분위기상, 고등학생 아들이 엄마와 영화 보는 게 조금 어수룩하게 보였던 것 같다.
그 일 이후 그 여자아이는 학원에서 나를 볼 때마다 “오~ 엄마랑 영화도 보러 다니고?” 하며 놀리곤 했다. 이상하게 그 말이 듣기 싫었고, 그때부터 어머니와 함께 밖에 나가는 것이 점점 의식되기 시작했다.
영화관에서의 어색한 상황 이후, 나는 개학을 해서 다시 바쁜 일상으로 돌아갔다.
개학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지가 휴가 겸 추석 연휴를 맞아 한국으로 잠시 들어오셨다. 오랜만에 네 식구가 모여 외식도 하고 즐거우면서도 어색한 시간을 보냈다. 그때 느낀 건, 사람이 참 적응의 동물이라는 점이었다. 어머니와 단둘이 지낸 지 얼마나 됐다고, 갑자기 다른 식구들이 들어오니 집이 시끌벅적해지는 게 오히려 어색했다.
그렇게 일주일 정도 보내고 아버지가 다시 해외로 나가셨다. 일상이 최근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몇 주가 지나 추석 연휴가 다가왔다.
나는 당연히 큰집에 갈 줄 알고 학원을 가지 않고 집에 왔는데, 어머니가 이번엔 큰집에 가지 않겠다고 하셨다. 아버지도 안 계시니 먼 데까지 가지 않아도 된다고 하셨다. 누나도 연휴 하루만 보내고 시험 준비 때문에 먼저 서울로 올라가겠다고 해서, 다시 나와 어머니 단둘이 남게 되었다.
그 긴 연휴를 둘만 보내니 그해 초의 적적함과 쓸쓸함이 다시 느껴졌다. 누나가 올라간 후 추석 당일, 어머니도 적적하셨는지 밖에 나가 외식도 하고 영화도 보자고 하셨다. 나는 저번 영화관 일이 떠올라 꺼려하는데, 어머니가 그때 상황을 눈치채셨는지 “영화는 됐고, 그냥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 둘이 밥 먹는 거야 뭐 어때?” 하셨다.
그때 알았다. 어머니도 느끼고 계셨다는 걸.
저녁때쯤 어머니와 외식을 하고 집에 돌아오니 8시쯤이었다. 추석 당일이라 식당을 찾느라 늦어졌다. 집에 들어오니 조금 무료하게 느껴졌다.
그러다 내가 “우리 비디오나 빌려서 집에서 볼까?” 하고 말하자, 어머니가 그러자고 하셨다. 집 앞 비디오 가게에 가서 이것저것 둘러보는데, 민망한 에로 비디오 코너가 눈에 들어와 눈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몰랐다. 내색하지 않고 비디오를 고르다 마땅한 게 없어서, 당시 가장 무난하고 인기 있던 박중훈 주연의 《마누라 죽이기》를 빌렸다.
어머니가 “이 영화 야하지 않아? 너 아직 이런 거 볼 나이 아니잖아” 하시며 웃으셨다. 내가 다른 걸 빌리려 하자 어머니가 “코믹 영화인데 어때, 그냥 빌리자” 하셨다.
집에 돌아와 어머니와 함께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감정들이 조금씩 올라오기 시작했다.
《마누라 죽이기》는 야한 영화는 아니었지만, 혈기왕성하고 예민했던 그 시기에 침대 신만 나와도 이상하게 흥분이 됐다. 더군다나 그전까지 자위는 했지만 실제 경험도 없고, 여자와 단둘이 영화를 본 적도 없어서 더 야릇한 느낌이었다. 밀폐된 공간에서 여자와 단둘이—비록 그 대상이 어머니였지만—그런 감정이 더 강하게 다가왔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해 초부터 어머니와의 관계 속에 다른 차원의 감정이 잔잔히 스며들어 있었던 것 같다. 배우 엄정화와 최진실이 박중훈과 야한 상황을 만드는 장면들이 나오자 표정 관리도 안 되고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제 자신이 어찌할 바를 몰랐다. 도둑이 제 발 저린다고, 이상함을 느끼니 기침하는 것조차 어색하고 몸을 움직이는 것도 부자연스러웠다. 난감한 마음에 어색한 말투로 “피곤해서 자야겠다” 하고 방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잠이 오지 않고 점점 야한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자위를 했는데, 그때가 돌이켜보면 건널 수 없는 강을 건넌 시작점이었다. 생전 처음으로 자위 대상이 어머니가 된 것이다.
자위를 하고 나서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한 거지’라는 생각과, 어머니를 범한 듯한 후회와 죄책감에 잠을 이룰 수 없었다. 하지만 그 쾌감은 지금까지 어떤 자위보다 컸다.
그 생각에 잠겨 잠이 든 후, 진짜 문제는 다음 날 아침부터 시작됐다.
늦게 일어나 부엌으로 나가니 어머니가 “일어났냐? 밥 먹자” 하셨다. 그런데 어제까지 보던 어머니가 아니었다. 그전까지 어머니를 ‘여자’로 느껴본 적이 없었는데, 그날 아침 본 어머니는 분명 여자로 인식됐다. 다시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 거지, 미쳤어?’ 하며 감정을 억눌렀다. ‘며칠 지나면 괜찮아지겠지’ 하는 생각으로.
연휴가 끝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다. 어머니에 대한 새로운 감정에 당황스럽고, 자신이 미친 것 같다는 마음에 혼란스러웠다. 그러나 그 못지않게, 어머니와의 성적 관계에 대한 욕망도 크게 피어오르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학교에서건 학원에서건 집중이 안 되고, 머릿속은 오로지 어머니에 대한 욕망으로 가득 찼다. 죄책감보다 욕망이 앞서기 시작했다. 현실적으로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라 여겼기에 더 몸이 달아올랐다.
그런 생각이 점점 지배하면서, 나는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행동을 바꾸기 시작했다. 어머니와 더 많은 시간을 가지기 위해 학원을 빠지고 일찍 집에 가거나, 방에 있지 않고 어머니와 시간을 보내려 했다.
그러다 욕망이 더 구체화되기 시작했다. ‘엄마가 좋다’, ‘어머니도 여자다’, ‘만져보고 싶다’는 식의 생각에서 벗어나 어떻게 할 수 있을까 하는 차원으로 넘어갔다.
2~3주쯤 지나 어머니가 갑자기 물으셨다. “요새 무슨 일 있어? 왜 이렇게 학원을 자주 빠져? 여자친구 생긴 거야?”
순간 당황했다. 그냥 “아니야”라고 하면 될 걸,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잠시 머뭇거리다 장난기 섞인 말투로 “무슨 여자친구… 가을 타나 봐” 하고 웃으며 대답했다. 어머니도 웃으시며 “어린 것이 가을은 무슨, 엄마 놀리냐?” 하셨다.
그때 웃으시는 어머니의 모습이 너무 예뻐 보였다. 내 생각은 단순히 ‘좋다, 예쁘다’에서 ‘어머니와 어떻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로 넘어가고 있었다.
그 후 많은 생각을 했다. 어린 나이에 철이 없어서 그런지, 뜬금없이 가슴을 만진다거나 같이 목욕하자거나 하는 야설 같은 방법들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그러다 제 생일이 다가올 무렵, 어머니가 “생일날 뭐 해줄까?” 하고 물으셨다. 내가 “밥이나 먹으면 되지” 하고 덤덤하게 대답하자, 어머니가 조금 시무룩해지시며 다시 물으셨다. “요새 정말 무슨 일 있냐? 중간고사 성적도 떨어지고 학원도 자주 빠지고…”
이번엔 농담으로 빠져나갈 수 없었다. 그래서 “기말고사는 몇 등 하겠다”는 식으로, 약간 짜증 섞인 말투로 대답했다. 어머니가 “왜 화를 내?” 하시며 혼을 내셨다. 단둘이 지낸 이후 첫 트러블이었다.
서로 까칠한 대화를 주고받다 기분을 풀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대화가 끝날 무렵 어머니가 “오늘은 기분 풀고, 너 생일날이 주말이기도 하니 재밌게 보내자. 원하는 거 다 해줄게” 하셨다.
‘원하는 거 다 해줄게’라는 말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알았다고 대답하고 웃으며 그날 대화를 마무리했다.
생일 당일 토요일, 학교를 갔다가 학원도 가지 않고 오후 2~3시쯤 집에 들어왔다. 어머니가 다른 때보다 더 반갑게 맞아주셨다. “오늘은 기분도 풀 겸 정말 재밌게 보내자” 하셨다.
그런데 집에 들어와 보니 누나가 와 있었다. 마음속엔 어머니와 단둘이 보내고 싶은 마음이 커서, 나도 모르게 툴툴거리는 말투가 나왔다. “뭐야, 뭐 하러 왔어?” 누나도 기분이 나빠 “너 보러 온 거 아니다”라고 대답했다.
어색한 대화 후 어머니가 “좀 있다 맛있는 거 먹으러 나가자” 하셨다. 나는 “맘대로 해” 하는 식으로 반응했다. 셋이서 밥을 먹으며 나는 대화에 제대로 끼지 않고 밥만 먹었다. 밥을 다 먹을 무렵 누나가 생일 선물로 장지갑을 주었다. 고맙다고 했지만, 방해 받았다는 느낌 때문에 진심이 아니었다.
그런데 선물을 주고 나서 누나가 “나 집에 안 들어가고 바로 서울로 갈 거야”라고 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빴던 기분이 확 풀렸다. 헤어지면서 “생일 선물 고마워, 조심히 올라가. 아까는 미안했다”고 말했다. 지금 생각하면 누나가 서울로 올라간다는 말이 가장 큰 생일 선물이었다.
누나를 터미널에 데려다주고 나와 어머니는 다시 단둘이 집에 돌아왔다. 샤워를 하고 정리한 뒤 거실에서 TV를 보고 있었다. 속으로 ‘생일이 이렇게 허무하게 지나가네’ 하면서도, 누나가 일찍 올라가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어머니와의 관계에 전기를 만들어야 하는데 누나 때문에 틀어졌다는 생각에 다시 짜증이 올라왔다.
그때 어머니가 “우리 연우(가명) 생일이 그냥 이렇게 지나가네. 누나가 선물 주긴 했지만, 내일이라도 엄마가 다른 거 사줄까? 말해봐” 하셨다. 나는 “괜찮아” 하며 자야겠다고 방으로 들어가려 했다. 순간 무슨 용기인지 모르게 입에서 말이 튀어나왔다.
“오늘 엄마랑 같이 자면 안 돼?”
나도 놀랐고 어머니도 멈칫 당황하셨다. 나는 얼른 “장난이야, 그냥 농담한 거야”라고 수습하려 했다. 초등학교 입학 이후로 누구와 같이 방을 쓰거나 어머니에게 살갑게 “같이 자자”고 한 적이 한 번도 없었기 때문에, 나 스스로도 당황스러웠다.
그런데 어머니가 되레 “정말? 그럴까? 그러면 내일 선물 안 사줘도 돼? 엄마 돈 굳었네” 하시며 웃으셨다. 오히려 당황한 건 나였다. 어머니는 나를 그냥 아들로, 나는 어머니를 여자로 보고 있었으니 서로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농담이야, 왜 그래”라고 다시 말하니 어머니가 “뭐 어때, 오랜만에 아들이랑 같이 자고. 뭐 어때서” 하셨다. 내가 마지못해 응하는 척하며 “그러고 정말 선물 안 사줄 거야? 그러면 엄마랑 같이 자기 싫어” 하고 한번 튕기니, 어머니가 “아니야, 선물 사줄게” 하셨다. 그렇게 마지못한 척하면서 어머니와 같이 침대에 누웠다.
어머니와 같이 자기로 한 후, 설렘과 두려움, 알 수 없는 기대감이 크게 다가왔다. 잠옷으로 갈아입고 어머니 방으로 가니, 어머니가 거실에서 이것저것 정리하고 계셨다. 나는 태연한 척 방으로 들어갔다. 어머니가 좀 있다 들어오셨다.
어머니도 어색하셨는지 “안 자? 안 피곤해?” 하시며 형식적인 말을 하셨다. 나도 형식적으로 “자야겠다” 하고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어머니가 잠옷으로 갈아입으시는데, 몸을 돌려서 입으셨지만 브라 끈과 팬티가 보였다. 그 모습만으로도 너무 흥분됐다.
어머니가 이불로 들어오셔서 정말 같이 누우니 어찌할 바를 몰랐다. 최대한 어색함을 보이지 않으려 노력했지만, 오히려 몸이 군대에서처럼 일자로 뻗어 있었고 움직이지도 못했다. 어머니가 하시는 말에 추임새만 넣었다.
30여 분 정도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니 조금 자연스러워졌다. 몸을 돌리며 대화를 하다 어머니와 마주 보는 자세가 됐다. 부부가 침대에서 마주 보는 그런 자세. 그런데 그 순간 다시 어색해졌다. 눈을 마주치기도, 몸을 돌리기도 어려웠다. 대화는 계속됐지만 분위기가 조금 야릇하게 흘렀다.
나는 조금씩 용기를 내어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대화도 다른 차원으로 돌리고, 손으로 어머니의 팔을 주무르며 “엄마는 나이 치고는 몸매가 좋네”라고 했다. 어머니도 썩 나쁘지 않으신지 웃으며 반응하셨다.
용기가 생겨 최대한 자연스럽게 어머니의 가슴을 살짝 만지며 “우리 엄마는 가슴도 예쁘고”라고 말했다. 어머니가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하셨다. 나는 “안 봐도 알지, 엄마 옷 입은 태를 보면” 하고 얼버무리며 장난기 섞인 말투로 “만져봐도 돼?”라고 했다. 어머니도 장난기 어린 말투로 “만져봐, 어때?” 하셨다.
천천히 잠옷 위로 어머니의 가슴을 더듬다가 살짝 주무르기 시작했다. 숨이 꼴깍 넘어가고 너무 흥분됐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는 모르겠지만 꽤 오래 만졌다.
그러다 어머니가 이상한 기분을 느끼셨는지 “그만 자야지, 피곤하다. 자자” 하셨다. 나는 아쉬운 마음에 더 만지고 싶었지만 현실은 그러지 못했다. 본능은 계속 가슴을 만지고 있었다. ‘지금이 아니면 이런 기회가 올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계속 만지고 있는데 순간 누가 제 손을 잡았다. 어머니셨다. “그만 자자” 다시 말씀하시며 제 눈을 보셨다. 그 순간 어머니도 무언가 느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본능적으로 어머니의 입술에 키스했다.
그런데 그건 착각이었다. 어머니가 “웁” 하는 소리를 내며 나를 밀쳐냈다. 몽환적 환각 상태가 확 깨졌다. 창피함과 당황스러움에 제 방으로 도망치듯 가버렸다.
그날 밤, 다시 몰려온 죄책감과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라는 생각에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내일 어머니 얼굴을 어떻게 볼지 걱정에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다음 날 아침, 어머니 얼굴을 볼 자신이 없었다. 9시쯤 가방에 책을 챙겨 그냥 나갔다. 어디로 갈지 계획도 없이. 갈 곳은 한 곳밖에 없었다. 피시방도 활성화되지 않은 때라 당구장도 혼자 가기 웃겼고, 결국 학원 열람실로 향했다.
열람실에서 멍하니 있다 12시쯤 친구들이 나오길래, 그 일을 잊자는 생각에 영화도 보고 시내를 돌아다녔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니 집에 들어가야 했다. 천천히 걸어 집에 들어가니 어머니가 아무렇지도 않게, 어제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대해주셨다. 나는 어제 일이 맘에 걸려 짧게 대답만 하고 방으로 들어갔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그날 어머니도 참 많은 생각을 하셨다고 한다.
그 후 나는 어머니 얼굴을 볼 자신이 없어서 최대한 일찍 등교하고, 학원에서 늦게 집에 오고, 주말에도 도망치듯 나가는 생활을 반복했다. 그러던 어느 날, 집에 들어오니 어머니가 제 방으로 들어오셨다.
너무 놀라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대책이 서지 않았다. 서로 멀뚱히 앉아 있는데 어머니가 이야기를 꺼내셨다.
“이 말을 할까 말까 고민을 많이 했다. 될 수 있으면 서로 그냥 아무렇지도 않게 지나갔으면 좋았을 것 같았는데… 네가 의식적으로 나를 피하는 걸 보니 어쩔 수 없이 말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시며 “엄마가 미안하다. 너 한참 예민할 때인데 내가 너무 장난을 친 것 같다. 그 나이 때는 그럴 수도 있는 거고, 엄마 잘못이니… 우리 그냥 아무렇지도 않게 예전처럼 재밌게 지내자” 하셨다.
그 순간 그냥 “엄마 죄송해요, 아니에요” 하면 될 일이었다. 그런데 그 말이 하기 싫었다. 그래서 처음으로 가장 큰 용기를 냈다.
“엄마가 뭐가 미안해? 내가 잘못한 건데… 그리고 그게 왜 아무렇지도 않은 일이야? 엄마는 그게 정말 아무렇지도 않은 일이야? 나한테 너무 좋았고… 아무 일 아닌 게 아닌 일이라고. 내가 미쳤는지는 모르겠지만, 난 엄마를 정말 사랑해.”
그 말을 하는 순간 어머니가 정말 놀라셨다. 그날 행동이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 예전부터 그런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반 미친놈이었다. 하지만 말을 하고 나니 마음이 후련해졌다.
그 얘기를 한 후 늦은 밤 그냥 밖으로 나갔다. 한두 시간 지나 집에 들어오니 어머니도 충격이 크셨는지 방에서 나오지 않으셨다. 그날 이후 어머니도 나를 의식적으로 피하셨다. 그런 패턴이 반복되며, 어떻게 이 실타래를 풀어야 할지 모르고 시간을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방에 들어가니 책상 위에 편지 한 통이 놓여 있었다. 어머니가 쓰신 편지였다.
편지 내용은 예전에 했던 말씀과 내가 어렸을 적 어떠했는지, 제 나이 때는 그런 감정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아들과 엄마 사이에 그런 일은 절대 일어나서도 안 되고, 일어나서도 안 된다는 내용이었다. 마음을 돌리라고, 내일부터는 의식적으로라도 예전 모자 관계로 돌아가자고 하셨다.
편지를 읽으니 허탈감과 짜증이 몰려왔다. 그런 일은 벌어질 수 없다는 내용에, 내가 미쳤었나 보다 정신 차리자는 게 아니라… 결과론이지만 관계를 가졌다는 것 자체가 미친 짓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편지를 받고도 내 행동은 달라지지 않았다. 이제는 죄송해서 못 보겠다는 생각보다, 이룰 수 없다는 허탈감과 짜증이 더 컸다. 어머니는 의식적으로 아침에 나를 배웅하시며 “학교 잘 갔다 오라고, 오늘 하루도 좋게 보내라”고 말씀하셨지만, 나는 말없이 그냥 나가곤 했다.
지금 생각하면 어린아이 투정이었다. 그렇게 몇 일이 지나도 달라진 게 없으니, 하루는 아침에 어머니가 화를 내셨다. “도대체 언제까지 이럴 거냐? 도대체 어쩌자는 거냐?”
그런데도 나는 말없이 문을 나서려 했다. 어머니가 우시며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나도 너무 힘들어” 하셨다. 그날 나도 눈물을 흘리며 학교에 갔다. 누가 보면 집안에 큰일이 난 것처럼.
그렇게 어머니와 냉각 상태에 들어갔다. 기말고사를 마무리하고 방학을 할 무렵, 토요일 밤 늦게 집에 들어오니 제 방 책상 위에 또 편지 한 장이 놓여 있었다.
가방을 던져놓고 옷도 벗지 않은 채 침대에 누워 생각에 잠겨 있다가, 옷을 갈아입으려 일어나다 편지를 발견했다. 읽기도 싫었지만 펼쳤다. 시간은 열시 반쯤이었다.
처음 내용은 역시 예상대로였다. 엄마와 아들 사이에 이런 일을 겪을 줄은 상상도 못했다고, 지금도 안 되는 건 안 된다고. 그런데 중간쯤 읽다 보니 내용이 달라졌다. 만약 너와 엄마 사이에 상상도 못할 일이 벌어진다면 그건 정말 건널 수 없는 강을 건너는 거라고, 후회해도 소용없다고.
마지막 다섯 번째 장을 보고 눈을 의심했다.
“네가 정말 마음을 돌리기 힘들다면 오늘 밤에 엄마 방으로 오라고. 오늘 엄마 방으로 오지 않으면 이제는 네가 마음을 다시 돌리고 우리가 다시 평범한 모자 관계로 돌아가는 거라 생각할 거야.”
편지를 읽고 많은 생각이 들었다. 이게 무슨 뜻일까, 정말 그런 일이 일어나는 건가, 어머니가 받아들여 주시는 건가. 하지만 현실의 벽은 높았다. 당장이라도 달려갈 것 같았지만 그건 착각이었다.
나중에 어머니와 대화하며 들은 이야기지만, 그건 네가 올지 안 올지 자신도 확신이 없었다고 한다. 막상 그렇게 말하면 현실의 벽에 부딪힐 거고 결국 말 거라는 생각이 더 컸다고. 지금 생각하면 어머니의 그 말은 정답이었다. 선택권이 주어지니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렇게 고민하다 시계를 보니 3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욕망이 너무 커서 합리화 방안을 찾았다. ‘시간도 늦었으니 지금 엄마 방에 가서 엄마가 자고 있으면 운명적으로 아니라고 여기고, 깨어 계시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자.’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자기 합리화지만, 철이 없고 욕망에 빠져 있었던 건 사실이었다.
그런 결심을 하고 발길을 어머니 방으로 돌렸다. 32평 아파트에서 제 방에서 어머니 방까지 몇 초 거리인데도 멀게 느껴졌다. 숨죽이며 문 앞에 섰다.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수능 날이나 중요한 일의 성패보다 더한 긴장감이었다.
숨을 몰아쉬고 방문을 열었다.
방 안을 들여다보니 어머니가 침대에 걸터앉아 계셨다. 그 순간 다리에 힘이 쫙 풀리고 이상하게 눈물이 났다. 죄책감, 미안함, 앞으로 벌어질 일에 대한 두려움 등 애달픈 감정이 뒤섞였다.
문을 열고 어머니와 눈이 마주친 순간, 다리에 힘이 풀리면서 주저앉았다.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다. 무슨 벌 받는 사람처럼 무릎 꿇고 울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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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에 진학하던 1996년, 벌써 17년이나 지난 일이다.
우리 집은 아버지, 어머니, 세 살 위 누나, 그리고 나까지 네 식구가 오순도순 사는 평범한 가정이었다. 누구라도 보면 여느 집과 다를 바 없는, 평범한 가족이었다.
그런데 고등학교에 들어가던 그해 초, 중소 무역회사에 다니시던 아버지가 3년 정도 해외 근무를 하게 되셨다. 누나는 서울로 대학에 진학했고, 결국 집에는 나와 어머니만 남게 되었다.
사실 그전까지 저와 어머니의 관계는 다른 집 모자 관계와 별로 다르지 않았다.
어머니는 조금 엄격하셨고, 아들에게 가끔 잔소리도 하시는 평범한 엄마셨다. 나 역시 십대 중반 사춘기 소년들이 흔히 그렇듯, 집에 오면 별말 없이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하고 인사한 뒤 방으로 들어가 대부분의 시간을 혼자 보내는 아이였다. 애교를 부리거나 살갑게 굴지도 않았다.
아버지와 누나가 집을 비우게 된 후, 어머니도 나도 집 안이 이상할 정도로 적적하고 쓸쓸하게 느껴졌다. 그전까지는 미처 느끼지 못했던 가족들의 존재감이었다.
처음에는 ‘그런가 보다, 시간이 지나면 익숙해지겠지’ 하며 별생각 없이 지냈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새로운 학교 생활에 적응하느라 정신없이 한 달을 보내다, 처음으로 숨을 돌릴 수 있는 휴일 식목일을 맞이했다. 일반 주말이 아닌 보너스 같은 휴일이라 몸도 피곤했고, “오늘은 학원도 가지 말고 집에서 푹 쉬어야겠다” 생각했다.
그날 처음으로 어머니와 단둘이 하루 종일 집에 머물며 밥을 먹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
시간이 흐르다 어머니가 문득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버지랑 누나도 없고, 너도 학교 때문에 얼굴 볼 시간도 거의 없어서 집에 있으면 참 쓸쓸했는데… 이렇게 너라도 집에 있으니 좋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만 그렇게 느꼈던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이후 ‘피곤하더라도 집에 있을 때는 어머니와 조금이라도 더 이야기를 많이 나눠야겠다’는 마음이 생겼다.
그날 이후, 나와 어머니는 점점 가까워졌다.
단순한 생물학적 모자 관계를 넘어 소소한 일상 이야기를 주고받고, 장난도 치며 제 또래 모녀보다도 친밀한 사이가 되어갔다. 자연스럽게 일요일이면 함께 장을 보고 쇼핑도 하고 영화도 보러 다니면서 우리의 관계는 더욱 돈독해졌다.
그러던 여름방학 보충수업이 끝난 뒤, 짧은 방학 기간 중 오랜만에 어머니와 영화를 보기로 했다. 평소처럼 표를 사고 영화관 로비에서 시간을 기다리고 있는데, 누군가 제 어깨를 툭 쳤다.
돌아보니 학원에서 꽤 친해진 여자아이였다. 우리는 짧게 인사를 나눴고, 그 아이가 “누구랑 왔어?” 하고 물었다. 내가 “엄마랑”이라고 대답하자, 그녀는 어머니에게 어색하게 인사를 했다. 조금 의아하다는 듯, 뻘쭘한 표정으로.
그 순간 나도 알 수 없는 어색함과 민망함이 밀려왔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때 사회 분위기상, 고등학생 아들이 엄마와 영화 보는 게 조금 어수룩하게 보였던 것 같다.
그 일 이후 그 여자아이는 학원에서 나를 볼 때마다 “오~ 엄마랑 영화도 보러 다니고?” 하며 놀리곤 했다. 이상하게 그 말이 듣기 싫었고, 그때부터 어머니와 함께 밖에 나가는 것이 점점 의식되기 시작했다.
영화관에서의 어색한 상황 이후, 나는 개학을 해서 다시 바쁜 일상으로 돌아갔다.
개학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지가 휴가 겸 추석 연휴를 맞아 한국으로 잠시 들어오셨다. 오랜만에 네 식구가 모여 외식도 하고 즐거우면서도 어색한 시간을 보냈다. 그때 느낀 건, 사람이 참 적응의 동물이라는 점이었다. 어머니와 단둘이 지낸 지 얼마나 됐다고, 갑자기 다른 식구들이 들어오니 집이 시끌벅적해지는 게 오히려 어색했다.
그렇게 일주일 정도 보내고 아버지가 다시 해외로 나가셨다. 일상이 최근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몇 주가 지나 추석 연휴가 다가왔다.
나는 당연히 큰집에 갈 줄 알고 학원을 가지 않고 집에 왔는데, 어머니가 이번엔 큰집에 가지 않겠다고 하셨다. 아버지도 안 계시니 먼 데까지 가지 않아도 된다고 하셨다. 누나도 연휴 하루만 보내고 시험 준비 때문에 먼저 서울로 올라가겠다고 해서, 다시 나와 어머니 단둘이 남게 되었다.
그 긴 연휴를 둘만 보내니 그해 초의 적적함과 쓸쓸함이 다시 느껴졌다. 누나가 올라간 후 추석 당일, 어머니도 적적하셨는지 밖에 나가 외식도 하고 영화도 보자고 하셨다. 나는 저번 영화관 일이 떠올라 꺼려하는데, 어머니가 그때 상황을 눈치채셨는지 “영화는 됐고, 그냥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 둘이 밥 먹는 거야 뭐 어때?” 하셨다.
그때 알았다. 어머니도 느끼고 계셨다는 걸.
저녁때쯤 어머니와 외식을 하고 집에 돌아오니 8시쯤이었다. 추석 당일이라 식당을 찾느라 늦어졌다. 집에 들어오니 조금 무료하게 느껴졌다.
그러다 내가 “우리 비디오나 빌려서 집에서 볼까?” 하고 말하자, 어머니가 그러자고 하셨다. 집 앞 비디오 가게에 가서 이것저것 둘러보는데, 민망한 에로 비디오 코너가 눈에 들어와 눈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몰랐다. 내색하지 않고 비디오를 고르다 마땅한 게 없어서, 당시 가장 무난하고 인기 있던 박중훈 주연의 《마누라 죽이기》를 빌렸다.
어머니가 “이 영화 야하지 않아? 너 아직 이런 거 볼 나이 아니잖아” 하시며 웃으셨다. 내가 다른 걸 빌리려 하자 어머니가 “코믹 영화인데 어때, 그냥 빌리자” 하셨다.
집에 돌아와 어머니와 함께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감정들이 조금씩 올라오기 시작했다.
《마누라 죽이기》는 야한 영화는 아니었지만, 혈기왕성하고 예민했던 그 시기에 침대 신만 나와도 이상하게 흥분이 됐다. 더군다나 그전까지 자위는 했지만 실제 경험도 없고, 여자와 단둘이 영화를 본 적도 없어서 더 야릇한 느낌이었다. 밀폐된 공간에서 여자와 단둘이—비록 그 대상이 어머니였지만—그런 감정이 더 강하게 다가왔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해 초부터 어머니와의 관계 속에 다른 차원의 감정이 잔잔히 스며들어 있었던 것 같다. 배우 엄정화와 최진실이 박중훈과 야한 상황을 만드는 장면들이 나오자 표정 관리도 안 되고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제 자신이 어찌할 바를 몰랐다. 도둑이 제 발 저린다고, 이상함을 느끼니 기침하는 것조차 어색하고 몸을 움직이는 것도 부자연스러웠다. 난감한 마음에 어색한 말투로 “피곤해서 자야겠다” 하고 방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잠이 오지 않고 점점 야한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자위를 했는데, 그때가 돌이켜보면 건널 수 없는 강을 건넌 시작점이었다. 생전 처음으로 자위 대상이 어머니가 된 것이다.
자위를 하고 나서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한 거지’라는 생각과, 어머니를 범한 듯한 후회와 죄책감에 잠을 이룰 수 없었다. 하지만 그 쾌감은 지금까지 어떤 자위보다 컸다.
그 생각에 잠겨 잠이 든 후, 진짜 문제는 다음 날 아침부터 시작됐다.
늦게 일어나 부엌으로 나가니 어머니가 “일어났냐? 밥 먹자” 하셨다. 그런데 어제까지 보던 어머니가 아니었다. 그전까지 어머니를 ‘여자’로 느껴본 적이 없었는데, 그날 아침 본 어머니는 분명 여자로 인식됐다. 다시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 거지, 미쳤어?’ 하며 감정을 억눌렀다. ‘며칠 지나면 괜찮아지겠지’ 하는 생각으로.
연휴가 끝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다. 어머니에 대한 새로운 감정에 당황스럽고, 자신이 미친 것 같다는 마음에 혼란스러웠다. 그러나 그 못지않게, 어머니와의 성적 관계에 대한 욕망도 크게 피어오르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학교에서건 학원에서건 집중이 안 되고, 머릿속은 오로지 어머니에 대한 욕망으로 가득 찼다. 죄책감보다 욕망이 앞서기 시작했다. 현실적으로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라 여겼기에 더 몸이 달아올랐다.
그런 생각이 점점 지배하면서, 나는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행동을 바꾸기 시작했다. 어머니와 더 많은 시간을 가지기 위해 학원을 빠지고 일찍 집에 가거나, 방에 있지 않고 어머니와 시간을 보내려 했다.
그러다 욕망이 더 구체화되기 시작했다. ‘엄마가 좋다’, ‘어머니도 여자다’, ‘만져보고 싶다’는 식의 생각에서 벗어나 어떻게 할 수 있을까 하는 차원으로 넘어갔다.
2~3주쯤 지나 어머니가 갑자기 물으셨다. “요새 무슨 일 있어? 왜 이렇게 학원을 자주 빠져? 여자친구 생긴 거야?”
순간 당황했다. 그냥 “아니야”라고 하면 될 걸,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잠시 머뭇거리다 장난기 섞인 말투로 “무슨 여자친구… 가을 타나 봐” 하고 웃으며 대답했다. 어머니도 웃으시며 “어린 것이 가을은 무슨, 엄마 놀리냐?” 하셨다.
그때 웃으시는 어머니의 모습이 너무 예뻐 보였다. 내 생각은 단순히 ‘좋다, 예쁘다’에서 ‘어머니와 어떻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로 넘어가고 있었다.
그 후 많은 생각을 했다. 어린 나이에 철이 없어서 그런지, 뜬금없이 가슴을 만진다거나 같이 목욕하자거나 하는 야설 같은 방법들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그러다 제 생일이 다가올 무렵, 어머니가 “생일날 뭐 해줄까?” 하고 물으셨다. 내가 “밥이나 먹으면 되지” 하고 덤덤하게 대답하자, 어머니가 조금 시무룩해지시며 다시 물으셨다. “요새 정말 무슨 일 있냐? 중간고사 성적도 떨어지고 학원도 자주 빠지고…”
이번엔 농담으로 빠져나갈 수 없었다. 그래서 “기말고사는 몇 등 하겠다”는 식으로, 약간 짜증 섞인 말투로 대답했다. 어머니가 “왜 화를 내?” 하시며 혼을 내셨다. 단둘이 지낸 이후 첫 트러블이었다.
서로 까칠한 대화를 주고받다 기분을 풀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대화가 끝날 무렵 어머니가 “오늘은 기분 풀고, 너 생일날이 주말이기도 하니 재밌게 보내자. 원하는 거 다 해줄게” 하셨다.
‘원하는 거 다 해줄게’라는 말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알았다고 대답하고 웃으며 그날 대화를 마무리했다.
생일 당일 토요일, 학교를 갔다가 학원도 가지 않고 오후 2~3시쯤 집에 들어왔다. 어머니가 다른 때보다 더 반갑게 맞아주셨다. “오늘은 기분도 풀 겸 정말 재밌게 보내자” 하셨다.
그런데 집에 들어와 보니 누나가 와 있었다. 마음속엔 어머니와 단둘이 보내고 싶은 마음이 커서, 나도 모르게 툴툴거리는 말투가 나왔다. “뭐야, 뭐 하러 왔어?” 누나도 기분이 나빠 “너 보러 온 거 아니다”라고 대답했다.
어색한 대화 후 어머니가 “좀 있다 맛있는 거 먹으러 나가자” 하셨다. 나는 “맘대로 해” 하는 식으로 반응했다. 셋이서 밥을 먹으며 나는 대화에 제대로 끼지 않고 밥만 먹었다. 밥을 다 먹을 무렵 누나가 생일 선물로 장지갑을 주었다. 고맙다고 했지만, 방해 받았다는 느낌 때문에 진심이 아니었다.
그런데 선물을 주고 나서 누나가 “나 집에 안 들어가고 바로 서울로 갈 거야”라고 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빴던 기분이 확 풀렸다. 헤어지면서 “생일 선물 고마워, 조심히 올라가. 아까는 미안했다”고 말했다. 지금 생각하면 누나가 서울로 올라간다는 말이 가장 큰 생일 선물이었다.
누나를 터미널에 데려다주고 나와 어머니는 다시 단둘이 집에 돌아왔다. 샤워를 하고 정리한 뒤 거실에서 TV를 보고 있었다. 속으로 ‘생일이 이렇게 허무하게 지나가네’ 하면서도, 누나가 일찍 올라가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어머니와의 관계에 전기를 만들어야 하는데 누나 때문에 틀어졌다는 생각에 다시 짜증이 올라왔다.
그때 어머니가 “우리 연우(가명) 생일이 그냥 이렇게 지나가네. 누나가 선물 주긴 했지만, 내일이라도 엄마가 다른 거 사줄까? 말해봐” 하셨다. 나는 “괜찮아” 하며 자야겠다고 방으로 들어가려 했다. 순간 무슨 용기인지 모르게 입에서 말이 튀어나왔다.
“오늘 엄마랑 같이 자면 안 돼?”
나도 놀랐고 어머니도 멈칫 당황하셨다. 나는 얼른 “장난이야, 그냥 농담한 거야”라고 수습하려 했다. 초등학교 입학 이후로 누구와 같이 방을 쓰거나 어머니에게 살갑게 “같이 자자”고 한 적이 한 번도 없었기 때문에, 나 스스로도 당황스러웠다.
그런데 어머니가 되레 “정말? 그럴까? 그러면 내일 선물 안 사줘도 돼? 엄마 돈 굳었네” 하시며 웃으셨다. 오히려 당황한 건 나였다. 어머니는 나를 그냥 아들로, 나는 어머니를 여자로 보고 있었으니 서로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농담이야, 왜 그래”라고 다시 말하니 어머니가 “뭐 어때, 오랜만에 아들이랑 같이 자고. 뭐 어때서” 하셨다. 내가 마지못해 응하는 척하며 “그러고 정말 선물 안 사줄 거야? 그러면 엄마랑 같이 자기 싫어” 하고 한번 튕기니, 어머니가 “아니야, 선물 사줄게” 하셨다. 그렇게 마지못한 척하면서 어머니와 같이 침대에 누웠다.
어머니와 같이 자기로 한 후, 설렘과 두려움, 알 수 없는 기대감이 크게 다가왔다. 잠옷으로 갈아입고 어머니 방으로 가니, 어머니가 거실에서 이것저것 정리하고 계셨다. 나는 태연한 척 방으로 들어갔다. 어머니가 좀 있다 들어오셨다.
어머니도 어색하셨는지 “안 자? 안 피곤해?” 하시며 형식적인 말을 하셨다. 나도 형식적으로 “자야겠다” 하고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어머니가 잠옷으로 갈아입으시는데, 몸을 돌려서 입으셨지만 브라 끈과 팬티가 보였다. 그 모습만으로도 너무 흥분됐다.
어머니가 이불로 들어오셔서 정말 같이 누우니 어찌할 바를 몰랐다. 최대한 어색함을 보이지 않으려 노력했지만, 오히려 몸이 군대에서처럼 일자로 뻗어 있었고 움직이지도 못했다. 어머니가 하시는 말에 추임새만 넣었다.
30여 분 정도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니 조금 자연스러워졌다. 몸을 돌리며 대화를 하다 어머니와 마주 보는 자세가 됐다. 부부가 침대에서 마주 보는 그런 자세. 그런데 그 순간 다시 어색해졌다. 눈을 마주치기도, 몸을 돌리기도 어려웠다. 대화는 계속됐지만 분위기가 조금 야릇하게 흘렀다.
나는 조금씩 용기를 내어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대화도 다른 차원으로 돌리고, 손으로 어머니의 팔을 주무르며 “엄마는 나이 치고는 몸매가 좋네”라고 했다. 어머니도 썩 나쁘지 않으신지 웃으며 반응하셨다.
용기가 생겨 최대한 자연스럽게 어머니의 가슴을 살짝 만지며 “우리 엄마는 가슴도 예쁘고”라고 말했다. 어머니가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하셨다. 나는 “안 봐도 알지, 엄마 옷 입은 태를 보면” 하고 얼버무리며 장난기 섞인 말투로 “만져봐도 돼?”라고 했다. 어머니도 장난기 어린 말투로 “만져봐, 어때?” 하셨다.
천천히 잠옷 위로 어머니의 가슴을 더듬다가 살짝 주무르기 시작했다. 숨이 꼴깍 넘어가고 너무 흥분됐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는 모르겠지만 꽤 오래 만졌다.
그러다 어머니가 이상한 기분을 느끼셨는지 “그만 자야지, 피곤하다. 자자” 하셨다. 나는 아쉬운 마음에 더 만지고 싶었지만 현실은 그러지 못했다. 본능은 계속 가슴을 만지고 있었다. ‘지금이 아니면 이런 기회가 올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계속 만지고 있는데 순간 누가 제 손을 잡았다. 어머니셨다. “그만 자자” 다시 말씀하시며 제 눈을 보셨다. 그 순간 어머니도 무언가 느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본능적으로 어머니의 입술에 키스했다.
그런데 그건 착각이었다. 어머니가 “웁” 하는 소리를 내며 나를 밀쳐냈다. 몽환적 환각 상태가 확 깨졌다. 창피함과 당황스러움에 제 방으로 도망치듯 가버렸다.
그날 밤, 다시 몰려온 죄책감과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라는 생각에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내일 어머니 얼굴을 어떻게 볼지 걱정에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다음 날 아침, 어머니 얼굴을 볼 자신이 없었다. 9시쯤 가방에 책을 챙겨 그냥 나갔다. 어디로 갈지 계획도 없이. 갈 곳은 한 곳밖에 없었다. 피시방도 활성화되지 않은 때라 당구장도 혼자 가기 웃겼고, 결국 학원 열람실로 향했다.
열람실에서 멍하니 있다 12시쯤 친구들이 나오길래, 그 일을 잊자는 생각에 영화도 보고 시내를 돌아다녔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니 집에 들어가야 했다. 천천히 걸어 집에 들어가니 어머니가 아무렇지도 않게, 어제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대해주셨다. 나는 어제 일이 맘에 걸려 짧게 대답만 하고 방으로 들어갔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그날 어머니도 참 많은 생각을 하셨다고 한다.
그 후 나는 어머니 얼굴을 볼 자신이 없어서 최대한 일찍 등교하고, 학원에서 늦게 집에 오고, 주말에도 도망치듯 나가는 생활을 반복했다. 그러던 어느 날, 집에 들어오니 어머니가 제 방으로 들어오셨다.
너무 놀라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대책이 서지 않았다. 서로 멀뚱히 앉아 있는데 어머니가 이야기를 꺼내셨다.
“이 말을 할까 말까 고민을 많이 했다. 될 수 있으면 서로 그냥 아무렇지도 않게 지나갔으면 좋았을 것 같았는데… 네가 의식적으로 나를 피하는 걸 보니 어쩔 수 없이 말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시며 “엄마가 미안하다. 너 한참 예민할 때인데 내가 너무 장난을 친 것 같다. 그 나이 때는 그럴 수도 있는 거고, 엄마 잘못이니… 우리 그냥 아무렇지도 않게 예전처럼 재밌게 지내자” 하셨다.
그 순간 그냥 “엄마 죄송해요, 아니에요” 하면 될 일이었다. 그런데 그 말이 하기 싫었다. 그래서 처음으로 가장 큰 용기를 냈다.
“엄마가 뭐가 미안해? 내가 잘못한 건데… 그리고 그게 왜 아무렇지도 않은 일이야? 엄마는 그게 정말 아무렇지도 않은 일이야? 나한테 너무 좋았고… 아무 일 아닌 게 아닌 일이라고. 내가 미쳤는지는 모르겠지만, 난 엄마를 정말 사랑해.”
그 말을 하는 순간 어머니가 정말 놀라셨다. 그날 행동이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 예전부터 그런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반 미친놈이었다. 하지만 말을 하고 나니 마음이 후련해졌다.
그 얘기를 한 후 늦은 밤 그냥 밖으로 나갔다. 한두 시간 지나 집에 들어오니 어머니도 충격이 크셨는지 방에서 나오지 않으셨다. 그날 이후 어머니도 나를 의식적으로 피하셨다. 그런 패턴이 반복되며, 어떻게 이 실타래를 풀어야 할지 모르고 시간을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방에 들어가니 책상 위에 편지 한 통이 놓여 있었다. 어머니가 쓰신 편지였다.
편지 내용은 예전에 했던 말씀과 내가 어렸을 적 어떠했는지, 제 나이 때는 그런 감정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아들과 엄마 사이에 그런 일은 절대 일어나서도 안 되고, 일어나서도 안 된다는 내용이었다. 마음을 돌리라고, 내일부터는 의식적으로라도 예전 모자 관계로 돌아가자고 하셨다.
편지를 읽으니 허탈감과 짜증이 몰려왔다. 그런 일은 벌어질 수 없다는 내용에, 내가 미쳤었나 보다 정신 차리자는 게 아니라… 결과론이지만 관계를 가졌다는 것 자체가 미친 짓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편지를 받고도 내 행동은 달라지지 않았다. 이제는 죄송해서 못 보겠다는 생각보다, 이룰 수 없다는 허탈감과 짜증이 더 컸다. 어머니는 의식적으로 아침에 나를 배웅하시며 “학교 잘 갔다 오라고, 오늘 하루도 좋게 보내라”고 말씀하셨지만, 나는 말없이 그냥 나가곤 했다.
지금 생각하면 어린아이 투정이었다. 그렇게 몇 일이 지나도 달라진 게 없으니, 하루는 아침에 어머니가 화를 내셨다. “도대체 언제까지 이럴 거냐? 도대체 어쩌자는 거냐?”
그런데도 나는 말없이 문을 나서려 했다. 어머니가 우시며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나도 너무 힘들어” 하셨다. 그날 나도 눈물을 흘리며 학교에 갔다. 누가 보면 집안에 큰일이 난 것처럼.
그렇게 어머니와 냉각 상태에 들어갔다. 기말고사를 마무리하고 방학을 할 무렵, 토요일 밤 늦게 집에 들어오니 제 방 책상 위에 또 편지 한 장이 놓여 있었다.
가방을 던져놓고 옷도 벗지 않은 채 침대에 누워 생각에 잠겨 있다가, 옷을 갈아입으려 일어나다 편지를 발견했다. 읽기도 싫었지만 펼쳤다. 시간은 열시 반쯤이었다.
처음 내용은 역시 예상대로였다. 엄마와 아들 사이에 이런 일을 겪을 줄은 상상도 못했다고, 지금도 안 되는 건 안 된다고. 그런데 중간쯤 읽다 보니 내용이 달라졌다. 만약 너와 엄마 사이에 상상도 못할 일이 벌어진다면 그건 정말 건널 수 없는 강을 건너는 거라고, 후회해도 소용없다고.
마지막 다섯 번째 장을 보고 눈을 의심했다.
“네가 정말 마음을 돌리기 힘들다면 오늘 밤에 엄마 방으로 오라고. 오늘 엄마 방으로 오지 않으면 이제는 네가 마음을 다시 돌리고 우리가 다시 평범한 모자 관계로 돌아가는 거라 생각할 거야.”
편지를 읽고 많은 생각이 들었다. 이게 무슨 뜻일까, 정말 그런 일이 일어나는 건가, 어머니가 받아들여 주시는 건가. 하지만 현실의 벽은 높았다. 당장이라도 달려갈 것 같았지만 그건 착각이었다.
나중에 어머니와 대화하며 들은 이야기지만, 그건 네가 올지 안 올지 자신도 확신이 없었다고 한다. 막상 그렇게 말하면 현실의 벽에 부딪힐 거고 결국 말 거라는 생각이 더 컸다고. 지금 생각하면 어머니의 그 말은 정답이었다. 선택권이 주어지니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렇게 고민하다 시계를 보니 3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욕망이 너무 커서 합리화 방안을 찾았다. ‘시간도 늦었으니 지금 엄마 방에 가서 엄마가 자고 있으면 운명적으로 아니라고 여기고, 깨어 계시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자.’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자기 합리화지만, 철이 없고 욕망에 빠져 있었던 건 사실이었다.
그런 결심을 하고 발길을 어머니 방으로 돌렸다. 32평 아파트에서 제 방에서 어머니 방까지 몇 초 거리인데도 멀게 느껴졌다. 숨죽이며 문 앞에 섰다.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수능 날이나 중요한 일의 성패보다 더한 긴장감이었다.
숨을 몰아쉬고 방문을 열었다.
방 안을 들여다보니 어머니가 침대에 걸터앉아 계셨다. 그 순간 다리에 힘이 쫙 풀리고 이상하게 눈물이 났다. 죄책감, 미안함, 앞으로 벌어질 일에 대한 두려움 등 애달픈 감정이 뒤섞였다.
문을 열고 어머니와 눈이 마주친 순간, 다리에 힘이 풀리면서 주저앉았다.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다. 무슨 벌 받는 사람처럼 무릎 꿇고 울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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